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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서울에는 추억이 참 많다.

    장거리 연애 시절 군산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번갈아 가며 지금 아내와 데이트를 했다.

    그렇게 연애를 9년정도 하다보니 안 가본 장소인가? 싶다가도 찾아보면 몇 년전에 찍은 사진이 나오기도 한다.

    독립하고 결혼해 경기도로 이사한 뒤로는 서울에 갈 일이 많이 줄었다.

    집에서 둘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고 평일에 출퇴근을 서울로 하다보니 주말만큼은 서울에 안가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연애할 때 갔던 장소, 활동들을 다시 해보고 싶어졌다.

    혜화에서 연극 보던걸 참 좋아했는데 연극도 보고 덕수궁도 가보기로 했다.

    혜화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정확히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는 빨간 벽돌로 된 건물, 포장마차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 길에서 연극 광고를 하는 사람들 등등 반가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 연애 보고서 공연장에서 들고 있는 연극 표

    “사내 연애 보고서” 라는 연극을 봤는데 시작 전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선물을 주는 오프닝 시간 멀티 배우가 몇 명을 지목해 선물을 받아야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다른 사람들은 부산에서 왔다, 시애틀에서 왔다, 장애인인데 연극보러 휠체어 타고 왔다 등의 답변을 했고 그러다 갑자기 아내한테도 질문이 들어왔다.

    당황한 아내는 “같이 산 지 2년 됐어요” 라고 아무말을 해버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진짜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나온 말 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제발 나만 걸리지 마라” 하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도 별만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긴하다.

    연극 보면서 질문 받아본 적은 없었는데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했다고 한다. 나도 뭔가 갑자기 질문 들어오면 아무말 이나 할 것 같다.

    연극은 배우들의 목을 아끼지 않는 열연으로 재밌게 감상했고 다음 목적지인 덕수궁으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내 연애 보고서 무대에서 인사하는 네 배우
    목을 아끼지 않던 배우들

    종로쪽에서 주말에 이동한게 너무 오래되서 감이 떨어졌을까? 버스가 너무 막혀서 뭐지? 싶었는데 집회가 있었다.

    아아아악!!!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걷는데 길 옆에 갑자기 큰 한옥이 보였다. 이런 계획하지 않게 튀어나오는 걸 우린 좋아해서 바로 들어가봤다.

    알고보니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 이라고 하는 곳 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사는 중학교때 공부하고 고등학교도 이과에 대학도 공대를 나와서 한번도 제대로 공부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흥선대원군 집을 보니 신기했다.

    아내는 운현궁 이라는 이름을 듣고 흥선대원군의 집이라는걸 알았다 그것도 신기했다.

    궁이나 이런 사대문안의 한옥을 볼때마다 조선 시대 높은 건물이 없던 시절 이런 한옥 안에서 창문을 통해서 밖을 바라보면 참 그것도 분위기 있겠다 싶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운현궁 한옥과 다과상
    차를 마시는 코스도 예약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도 조선 시대 역사에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보면 궁 생활도 쉽지 않았겠다 싶기도 하고 잘 모르니 난 그냥 분위기만 즐겨야겠다.

    운현궁에서 전통 머리 모양의 얼굴 가리개를 들고 있는 아내
    조선 시대 궁에 사는 여자들 목 안 꺾였을까?
    운현궁의 낮은 한옥 출입문 앞에 서 있는 나
    머리가 닿아서 다행이다.

    또 작은 그림 전시도 운현궁에서 하고있었는데 직장인들이 민화 그리기를 배워서 하는 전시였다.

    운현궁 민화 전시에 걸린 산과 해를 배경으로 한 인물 그림

    직접 민화를 배워서 그린다. 의지도 대단하고 그 의지만큼이나 실력들도 대단했다.

    운현궁에서 사진도 찍고 놀고 하다가 다시 덕수궁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10분정도 걸었을까 고급 갤러리, 전통 물품 상점, 생활 한복을 전시한 골목이 나왔다.

    골목에 있는 전통 공예품 가게 입구

    인사동인가? 싶어서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길는데 역시 골목을 빠져 나가자 인사동 메인 거리가 나왔다.

    차(Tea)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인사동 차 페어를 방문했던게 마지막 방문이었는데 아내는 가게를 여기저기 보며 신나했고 특히 이번에는 일월 오봉도, 나전칠기에 푹 빠졌다.

    꽃과 새무늬로 장식된 자개 상자들
    촌스러운거 같으면서도 이쁜거 같다

    어릴때 할머니집을 가면 검은색에 자개로 화려하게 장식된 옷장, 함 들이 되게 많았고 그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 자개로 장식된 것들을 보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몇몇 상점들을 구경하고 오랜만에 쌈지길을 둘러봤는데 특히 한지 공예와 조명을 곁들인 가게가 인상적이라 들어가 구경했다.

    어릴때 초등학교나 유치원때 체험으로 한지공예를 해본 것 정도가 한지에 대해서는 내 인생에서 전부인데 조명을 보니 은은한 매력이 있었다.

    쌈지길 가게에 전시된 한지 공예 조명들
    하나 가져오고 싶다
    조명이 켜진 쌈지길의 여러 층과 안뜰
    2층 가운데 조명 가게. 아 사진으로는 분위기가 잘 안 담기네

    스탠드, 벽걸이, 탁상용 등 다양한 사이즈의 조명이 있었는데 침실에 조선시대의 은은한 촛불 느낌의 조명을 하나 가져오고 싶었다.

    신기했던게 여기저기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 자개 공예, 한지 공예 등 원가를 만드는 과정을 진행하는 곳이 많았는데 자개 공예로 나만의 물건을 만드는건 나중에 한번 해보고 싶다.

    가게 선반에 놓인 작은 도자기 병들
    귀여움. 백자

    아내는 고민하다가 자개 반지를 하나 구매했고 웃기게도 자개 반지 옆에 전복 껍데기를 6천원에 팔고 있었다.

    명절에 먹고 남은 전복 껍데기가 몇 개인데 나도 부업으로 전복 껍데기를 팔아야할까?

    저녁을 먹고 다시 덕수궁으로 향했다.

    가다보니 갑자기 청계천이 나온다 청계천 까지 즐겨버릴 줄 생각 못 했는데 양파 같은 날이다. 컨텐츠를 계속 준다.

    밤의 청계천과 물가를 걷는 사람들
    청계천 다리 위에서 풍경을 촬영하는 아내

    청계천도 오랜만에 오니 물가 주변에 편한 빈백 스러운 의자를 설치해놨다. 저기 앉아서 물 멍 하다보면 왜가리 같은 새가 나타나서 물고기도 잡아먹고 하는걸 지켜보면서 시간 많이 보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이다.

    가는 길에 맥도날드 소프트 콘을 하나 먹었다. 군것질을 거의 안 하는 나는 마지막으로 소프트 콘을 먹었던게 기억도 안 난다.

    500원이라는 가격은 기억하는데 요즘 소프트 콘은 1,500 원이더라 너무 당연하긴 한데 놀래 버렸다.

    밤거리에서 손에 들고 있는 소프트 콘
    충격의 소프트 콘

    예전에 부모님이 짜장면 100원, 라면 50원 등등 이야기 해주면 어떻게 그러지? 싶었다.

    나도 자식들한테 그런 이야기 할 때가 되면 컵 떡복이 하나에 300원, 큰건 500원, 스티로폼에 주는건 1,000원 이라고 하면 이해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때는 진짜 소프트 콘 하나에 3,000원 정도 할까?

    놀랍게도 혜화 연극 보고 바로 덕수궁 가는 일정이었는데 혜화 – 덕수궁 가는 길에 예상치 못 한 컨텐츠가 너무 많아 이미 상당히 알찬 하루였다.

    덕수궁에 거의 다 왔을때쯤 서울 시청 광장에 설치된 수 많은 빈백과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 여유롭게 누워 자는 사람, 책 읽는 사람, 폰 보는 사람 등등 사람들이 보였다.

    이건 또 뭐지 싶었지만 서울 야외 도서관이라고 한다.

    밥 먹고 피곤하기도 했고 날씨도 선선하니 밖에 있기만해도 기분좋아지는 우리나라에서 얼마 안되는 소중한 계절이라 편히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나는 좀 쪽잠 자고 아내는 책을 읽었다.

    주말에 카페 가서 책을 좀 읽으려고 해도 막상 카페에 가면 소란스럽고 해서 책은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읽은 적이 많다.

    그런데 큰 야외 공간에 적절히 깔리는 음악, 적절한 일상 소리, 분위기 등등이 잘 어우러져 여기는 책 들고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덕수궁 입장 마감 시간인 8시에 맞춰가기 위해 10분전에 출발했는데 덕수궁 입장줄이 상당히 길었다.

    더 길어지기 전에 호다닥 달려가 줄을 섰고 정말 운 좋게 7시 59분에 딱 안전하게 덕수궁에 들어갔다!

    조명이 켜진 덕수궁 건물과 밤의 관람객들
    세이프다

    9시에 관람 마감이라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특이하게 창호지 아래 부분이 올라가 있는 건물들이 있어 건물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열린 문 너머로 내부가 보이는 덕수궁 건물

    사진도 찍고 아내와 이런저런 감상을 남기면서 걷다보니 다른 궁들에서 볼 수 없는 돌로된 석조전 건물이 보였다.

    덕수궁에 올때마다 다음에는 밤의 석조전 예약해서 와봐야지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저긴 언제 가볼 수 있을까?

    9시 까지 꽉 채워서 선선한 가을 날씨를 즐기며 덕수궁을 즐겼고 나와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역 출발이라 다행히 지하철에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갔다 마무리 까지 완벽!

    혜화, 덕수궁 딱 2개만 정하고 왔는데 예상치 못한 엄청난 컨텐츠들, 시위로 인해 버스가 밀려서 당시에는 빡쳤지만 또 그게 아니라면 가지 못 했을 운현궁, 인사동 거리, 오랜만의 맥도날드 소프트 콘, 서울 야외 도서관 등…

    이런 인생의 선물 같은 순간들 너무 소중하다.